[스크랩] 라오스 - 방비엥
남송강은 유유히 흐르고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은 동글동글하게 솟아 있다. 라오스 방비엥 사람들은 그 물줄기와 산줄기에 깃들여 마을을 형성해 조용조용 살아간다. 밭을 일구고 제 짝을 만나 아이를 낳으며, 지구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그렇게 산다는 것을 일러주듯 여여하게 살아간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섬진강 줄기나 지리산 자락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삶 같다. 곡괭이를 어깨에 걸머메고 들판으로 가는 남자들, 물지게를 지고 부엌으로 가는 여인들, 소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우리나라의 옛 모습이 꼭 그랬다는 것을 일러주듯 그들은 유유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방비엥은 특별한 볼거리가 아닌 길 위에서 만나는 은근한 온도의 풍경과 이야기와 사람이 전부인 곳이다.
![]() ◇해질 무렵 라오스의 방비엥은 우리나라 옛 시골 풍경과 참 많이도 닮았다. |
일 냇가에서 발가벗고 놀던 어린 날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이면 중심가와 그 주변 마을은 다 둘러볼 수 있는 방비엥. 이곳의 모든 길에서 만나는 이들은 모두 수줍다. 인사라도 건네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여자아이들은 수줍다 못해 달아나지만, 다시 한 번 휙 돌아보고는 얼굴이 더 붉어진다. 그러나 어딘가에 숨어서 내 걸음을 주시하고 있을 것을 안다. 두렵고 서먹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이 시대에는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그 수줍음이란 감정. 나는 그 감정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구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비엥은 그렇게 촌사람과 도시인이 함께 얼굴 붉어지는 곳이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방비엥에선 사원보다 동굴이 근사하다기에 탐 푸캄이란 동굴로 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강을 건넌다. 긴 다리 위에 서니 강변의 마을사람들이 다 보인다. 빨래를 하는 여인들과 고기를 잡는 아이들이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다가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정겨운 마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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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의 나무 우거진 쪽에선 마을의 여자 아이들이 옷을 다 벗은 채 수영을 즐긴다. 그들만의 유토피아다. |
푸른 초원에서 느긋하게 걸어다니는 염소들, 큰 나무 아래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 에메랄드빛 냇물에서 헤엄치는 큰 물고기들, 그리고 나무 위에서 그 맑은 냇물로 첨벙 뛰어내리는 아이들. 게다가 냇물의 나무가 우거진 한쪽 구석에선 여자아이들이 옷을 다 벗은 채 수영을 한다. 그 모습은 정말 영화에서나 본 낙원의 모습이다. 그 풍경 앞에 서자 햇볕에 그을리고 땀에 절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몸과 마음이 씻기는 것만 같다. 그러니 바로 신발을 벗고 나무 위로 올라가 에메랄드빛 물로 뛰어들 수밖에.
방비엥엔 강물을 따라 래프팅을 즐기러 오는 여행객이 많지만, 여여하고 유유한 풍경을 원하는 여행자라면 탐 푸캄 동굴로 가는 초원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처럼 여러 날 신발을 벗어 두게 된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여행의 경로를 잠시 멈추게 된다.
그러다가 아차 싶어 산길을 오르고 올라 탐 푸캄 동굴을 찾게 되는 날엔,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방비엥의 산과 동굴과 초원과 냇물의 어우러짐에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동굴 안에 모셔진 불상 앞에서 가만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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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이면 들판에서 소떼를 몰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그 아이들도 금세 얼굴을 노을빛으로 붉히며 웃었다. |
다시 쏭강을 건너기 위해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다가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빈 수레를 타고 오는 어린 삼 형제를. 삼 형제는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 다투어 아버지의 빈 수레에 올라타느라 까르륵 웃어대고 아버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좋아 수레를 힘껏 밀었다가 멈추며 장난을 쳐준다. 그러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자지러진다. 장난감 하나 없는 시골 마을 아이들, 누런 먼지 날리는 황톳길에서 아버지의 빈 수레를 타는 게 가장 신나는 아이들. 콧잔등과 발등과 손등에도 흙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삼 형제는 이런 날은 행운이라는 듯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의 수레는 더욱 덜컹거리며 더 짙은 흙먼지를 날리며 해지는 방비엥의 붉은 노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저녁이 아름다운 것은 저토록 짐이 없고 텅 비어 노래의 리듬을 타는 수레바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해가 지고 모든 방비엥의 수레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여인들은 저녁밥을 짓기 위해 물지게를 지고 부엌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들판의 소떼를 몰아 집으로 돌아간다. 가진 것 많지 않아 자랑할 만한 것은 없어도 그 누구보다 부족한 것 없는, 수레바퀴처럼 천천히 돌아가는 삶이 그곳에 있었다. 그다지 오래전이 아닌, 우리의 시골과 참 많이도 닮은 풍경과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방비엥의 저녁은 그토록 친근하고 눈물겨운지도 모르겠다.
방비엥의 동그란 산봉우리들 사이로 해가 지는 동안 나는 물끄러미 들판에 앉아 그 시간을 가만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느꼈다. 삶의 평온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잃은 대부분의 것들이 그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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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손을 꼭 붙잡고 어두워지는 강을 건너는 두 여인은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
시인·여행작가
〉〉둘러 볼만한 곳
방비엥에는 탐 푸캄 외에도 둘러볼 만한 동굴들이 많다. 그 동굴을 찾아가는 길 위에선 참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방비엥 여행의 최고 행복이다.
탐 짱: 방비엥 중심가에서 도보로 20분이면 닿는다. 동굴을 둘러보고 나와 입구에서 왼쪽 길을 따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그곳에 서면 방비엥 일대가 펼쳐져 보인다.
탐 쌍: 북쪽으로 13㎞ 떨어져 있어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야 한다. 주변엔 탐 호이, 탐 로웁, 탐 남이라는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 가려면 여행사 투어를 신청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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