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쪽 모두를 옮길 수는 없고 몇 군데 안 사돈의 글을 옮겨 보려 한다.
***왔다리 갔다리*** 중에서
우리 부부는 곡성에서, 올 1월에 결혼한 큰 아들은 용인에서, 대학 졸업반인
막내는 광주에서 자취를 하고 있으니 저절로 네 집 살림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왔다리 갔다리'라는 감투를 쓰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구십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은 맏며느리인 내가 손발이 닳도록 오가며 보살펴
드려야 하고, 결혼은 했지만 부부 교사인 큰 아들 내외도 바쁘게 살고 있으니
김치며 밑반찬은 내가 해 주어야 한다.
--중략--
이렇게 '왔다리 갔다리, 노릇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가장 소홀해 지는 게 남편이다.
어머님과 자고 오는 날엔 아침밥을 해 가지고 첫 차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때론 아침을 거르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잠깐 먹고 가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 불평없이 잘 참아주는 남편이 고맙고
든든 하다.
--중략--
힘든 고교 시절에도 너희들 뒷바라지 해 주지 못하고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께 잘 하면
내 책임을 다 한 것처럼 살았었다.
광주에서 너희 형제 자취할 때도 엄마는 무릎이 아파 자주 가서 보살펴 주지 못하고 고생
시켰던 게 이렇게 가슴이 아프구나.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못 잊고 끼니 때마다 너희들도
생각나다 보니 네 집 살림 '왔다리 갔다리 '엄마가 되었구나.
***어머님 갔다 올게요. ***중에서
'어머님 갔다 올게요' 변함없는 인사를 하고 돌아 오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맏며느리인 제 입장에서는 혼자 사시는 모습을 뵙기가 항상 죄송스럽고 걱정이 됩니다.
--중략---
자가용을 구입한 것은 남편이 회갑이 지난 후의 일로 그 전에는 동네 맨 안쪽의 집에서 걸어 나오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습니다 어쩌다 뒤 돌아 보면 그 때 까지도 대문 앞에 서 계시는 모습에 부모님의 마음을
짐작하며 더욱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올 때마다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
갈 때 마다 '어머님 , 갔다 올게요. 라는 인사로 대신하며 살아 왔습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중에서
사랑하는 아가야 , 열 달 동안 엄마 뱃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나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아가야!
천사러럼 예쁜 우리 아가야! 너와의 만남이 이렇게 벅차고 기쁠 수 없구나 .
열 달 동안이나 너를 뱃속에 담고 힘든 직장 생할을 해온 너의 엄마,그리고 기대와 기다림으로 가슴
설레며 열심히 살아온 너의 아빠와 드디어 한 가족이 되었구나.
---중략--
할머니, 할아버지 감투를 쓰게 해 준 우리 아가야.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거라.
***우촌을 떠나시는 오빠께***중에서
오빠께서 무사히 정년을 맞이 하게 된 데에는 오빠의 무한한 노력과.....---중략---
오빠! 항상 불러 보고 싶고 불러보면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큰 오빠가 자랑스러워요.
전라도 개땅쇠라 괄시를 받던 한양 땅에 가셔서 그 치열한 경쟁속에서 인정받고 우촌의 교장
자리에 우뚝 서셔서 학교를 반석위에 올려 놓으셨고 큰 과오 없이 우촌을 떠나시게 된 점 너무
기뻐요.
---중략---
오빠 ! 이젠 그 어렵고 힘겨웠던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시고 접었던 날개 활짝 펴시고
오빠의 인생을 사세요.
'그를 위해 부는 나팔 없고 그를 기다리는 황금 마차도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가슴을 장식
하지도 않는다.라는 무명교사 예찬의 한 구절처럼 그 것에 어울리는 삶을 묵묵히 살아 오셨습니다.
--후략--
***사랑스런 며느리 경희에게***중에서
~~전략~
그동안 우리 식구의 일원이 되어 경원이와 민수를 낳아 어느새 중학생이 되고 4학년이 되었구나
직장 생활하며 살림까지 빈틈없이 꾸려 나가는 모습에 감탄을 하고 믿음직스러운 마음이 절로 드는구나.
--중략--
비록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맏며느리라는 굴레를 쓰고 있으니 부담 가고 힘들 것이다 .
그럴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고 위안을 삼거라. 엄마 아빠는 될 수 있는 한 너희들에게 짐 지워 주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써 왔단다. --후략--
***둘째 민수야***중에서
민수야, 남자란 씩씩해야 한단다.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꿋꿋이 고난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어야해.
너는 우리집을 이어 갈 대들보야.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민수가 멋진 청년으로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사는 모습도 보고 싶은데 세월이 그렇게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중략---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너를 상상해 보니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구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장손
많이 많이 사랑한단다.
***당신의 70회 생신을 맞이 하여***중에서
항상 젊고 생기 넘치는 모습에 70이라는 나이가 늘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는데 어느새 세월이 흘러 당신도
70살이 되었군요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건강하게 내 곁을 지키면서 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중략--
억만 겁의 인연이 닿아야 부부가 될 수 있다고 하지요. 경주 김씨 도련님과 전주 이씨 아가씨가 부부의 인연을
맺고 행복하게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서로 사랑하며 여생을 보내기로 해요.
--중략--
다시 한번 당신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이 다음 생에도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건강한 몸으로 당신을
다시 만나 전생에서 미안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탑동댁 아홉 남매***
첫째는 맏형이라 믿음직 하지만 말 수가 적고
둘째는 둘도 없는 효자에 부지런 하고 자상하며
셋째는 영국 신사에 유머가 넘치고
넷째는 날씬한 모습에 만담꾼이며
다섯째는 밖으로는 강한 척 안으로는 인정이 철철
여섯째는 늦둥이에 잔 정 많고 효자라네.
맏동서 이 여자는 뚱뚱보에 인정이 많고
둘째 동서 김 여사는 활달하고 척척박사
셋째 동서 소 여사는 요조 숙녀 천사라네.
넷째 동서 방 여사는 부지런하며 요리 박사
다섯째 동서 이 여사는 고운 얼굴에 마음도 예쁘고
막내 동서 윤 여사는 착하고 똑똑하다네.
많은 글 중에 발췌한 귀절이지만 구구 절절 정이 넘치고 애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