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 온 님들

[스크랩] 라오스 - 방비엥

새울* 2011. 1. 3. 19:21

남송강은 유유히 흐르고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은 동글동글하게 솟아 있다. 라오스 방비엥 사람들은 그 물줄기와 산줄기에 깃들여 마을을 형성해 조용조용 살아간다. 밭을 일구고 제 짝을 만나 아이를 낳으며, 지구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그렇게 산다는 것을 일러주듯 여여하게 살아간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섬진강 줄기나 지리산 자락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삶 같다. 곡괭이를 어깨에 걸머메고 들판으로 가는 남자들, 물지게를 지고 부엌으로 가는 여인들, 소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우리나라의 옛 모습이 꼭 그랬다는 것을 일러주듯 그들은 유유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방비엥은 특별한 볼거리가 아닌 길 위에서 만나는 은근한 온도의 풍경과 이야기와 사람이 전부인 곳이다.

 



◇해질 무렵 라오스의 방비엥은 우리나라 옛 시골 풍경과 참 많이도 닮았다.

 

 

일 냇가에서 발가벗고 놀던 어린 날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이면 중심가와 그 주변 마을은 다 둘러볼 수 있는 방비엥. 이곳의 모든 길에서 만나는 이들은 모두 수줍다. 인사라도 건네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여자아이들은 수줍다 못해 달아나지만, 다시 한 번 휙 돌아보고는 얼굴이 더 붉어진다. 그러나 어딘가에 숨어서 내 걸음을 주시하고 있을 것을 안다. 두렵고 서먹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이 시대에는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그 수줍음이란 감정. 나는 그 감정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구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비엥은 그렇게 촌사람과 도시인이 함께 얼굴 붉어지는 곳이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방비엥에선 사원보다 동굴이 근사하다기에 탐 푸캄이란 동굴로 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강을 건넌다. 긴 다리 위에 서니 강변의 마을사람들이 다 보인다. 빨래를 하는 여인들과 고기를 잡는 아이들이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다가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정겨운 마을 풍경이다.





◇냇물의 나무 우거진 쪽에선 마을의 여자 아이들이 옷을 다 벗은 채 수영을 즐긴다. 그들만의 유토피아다.

탐 푸캄까지 가는 동안은 계속해서 누런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만 한다. 그러다가 사람을 전혀 피하지 않는 소떼를 만나기도 하는데 어디선가 달려온 아이들이 흙탕물인 냇물에서 그 소떼와 함께 목욕을 하고 소를 타며 놀기도 한다. 그렇게 흙먼지 가득한 풍경 속에서 온몸에 누런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달려야만 탐 푸캄 동굴 앞의 환상적인 초원과 냇물에 다다를 수 있다.

푸른 초원에서 느긋하게 걸어다니는 염소들, 큰 나무 아래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 에메랄드빛 냇물에서 헤엄치는 큰 물고기들, 그리고 나무 위에서 그 맑은 냇물로 첨벙 뛰어내리는 아이들. 게다가 냇물의 나무가 우거진 한쪽 구석에선 여자아이들이 옷을 다 벗은 채 수영을 한다. 그 모습은 정말 영화에서나 본 낙원의 모습이다. 그 풍경 앞에 서자 햇볕에 그을리고 땀에 절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몸과 마음이 씻기는 것만 같다. 그러니 바로 신발을 벗고 나무 위로 올라가 에메랄드빛 물로 뛰어들 수밖에.

방비엥엔 강물을 따라 래프팅을 즐기러 오는 여행객이 많지만, 여여하고 유유한 풍경을 원하는 여행자라면 탐 푸캄 동굴로 가는 초원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처럼 여러 날 신발을 벗어 두게 된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여행의 경로를 잠시 멈추게 된다.

그러다가 아차 싶어 산길을 오르고 올라 탐 푸캄 동굴을 찾게 되는 날엔,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방비엥의 산과 동굴과 초원과 냇물의 어우러짐에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동굴 안에 모셔진 불상 앞에서 가만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해거름이면 들판에서 소떼를 몰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그 아이들도 금세 얼굴을 노을빛으로 붉히며 웃었다.

아버지의 빈 수레에 실려 노래하던 날

다시 쏭강을 건너기 위해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다가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빈 수레를 타고 오는 어린 삼 형제를. 삼 형제는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 다투어 아버지의 빈 수레에 올라타느라 까르륵 웃어대고 아버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좋아 수레를 힘껏 밀었다가 멈추며 장난을 쳐준다. 그러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자지러진다. 장난감 하나 없는 시골 마을 아이들, 누런 먼지 날리는 황톳길에서 아버지의 빈 수레를 타는 게 가장 신나는 아이들. 콧잔등과 발등과 손등에도 흙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삼 형제는 이런 날은 행운이라는 듯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의 수레는 더욱 덜컹거리며 더 짙은 흙먼지를 날리며 해지는 방비엥의 붉은 노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저녁이 아름다운 것은 저토록 짐이 없고 텅 비어 노래의 리듬을 타는 수레바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해가 지고 모든 방비엥의 수레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여인들은 저녁밥을 짓기 위해 물지게를 지고 부엌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들판의 소떼를 몰아 집으로 돌아간다. 가진 것 많지 않아 자랑할 만한 것은 없어도 그 누구보다 부족한 것 없는, 수레바퀴처럼 천천히 돌아가는 삶이 그곳에 있었다. 그다지 오래전이 아닌, 우리의 시골과 참 많이도 닮은 풍경과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방비엥의 저녁은 그토록 친근하고 눈물겨운지도 모르겠다.

방비엥의 동그란 산봉우리들 사이로 해가 지는 동안 나는 물끄러미 들판에 앉아 그 시간을 가만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느꼈다. 삶의 평온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잃은 대부분의 것들이 그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손을 꼭 붙잡고 어두워지는 강을 건너는 두 여인은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다시 다리를 건너오며 보았다. 아침과는 다른 강변의 저녁 풍경을. 다리를 건너려면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바지와 치마를 걷어올리고 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사람들을. 그중에서도 늙은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강을 건너는 여인을. 나는 그 두 여인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일지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일지, 아니면 그저 옆집에 사는 사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토록 서로 의지하며 어두워지는 강을 건너는 것이 우리의 모든 삶일 것이라고.

시인·여행작가

〉〉둘러 볼만한 곳

방비엥에는 탐 푸캄 외에도 둘러볼 만한 동굴들이 많다. 그 동굴을 찾아가는 길 위에선 참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방비엥 여행의 최고 행복이다.

탐 짱: 방비엥 중심가에서 도보로 20분이면 닿는다. 동굴을 둘러보고 나와 입구에서 왼쪽 길을 따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그곳에 서면 방비엥 일대가 펼쳐져 보인다.

탐 쌍: 북쪽으로 13㎞ 떨어져 있어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야 한다. 주변엔 탐 호이, 탐 로웁, 탐 남이라는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 가려면 여행사 투어를 신청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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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태국에서 세계로
글쓴이 : pink pi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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