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는 이야기

[스크랩] 나의 할아버지~~~~3

새울* 2010. 3. 14. 13:38

 

 아버지의 서울 전근으로 신탄진에서의 생활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할아버지도 노쇠하시어 더 이상 농사일을 할 수없게 된것도 원인이리라...
4,19가 나던해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접고 서울로 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오로지 늙으면 아들을 따라 같이 살아야 한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지금의 워커힐자리에 터를 잡고 살았다.


넓진 않지만 밭도 있었고 터도 넓어 아버지가 좋아 하시던 각종 꽃,
일본에서 직수입한 희귀한 꽃들을 주로 재배 하셨다.

 

할아버지는 소일 거리가 없으시니 마당 한 구석에 닭장을 만들어 씨암탉 몇마리를 키우셨다.
달구방 토종닭이 친구들을 과수원에 불러 들여 서리를 도모한 것과 같이
내 유일한 남동생...할아버지에겐 3대독자 내 동생이 동네 또래들과 공모를 하여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키우시던 씨암탉 두마리를 서리를 해 간거다.

 

아침에 그 사실을 아신 할아버지....분노가 이만 저만이 아니시다.
그 시절 광나루 위아래 동네의 호수는 30여호....
집집마다 쓰레기장...옛날엔 두엄이라 했나.. 한집도 거르지 않고 샅샅이 뒤지고 다니셨다.
몇날 며칠을 하루도 빠짐없이 뒤지고 다니셨는데도 닭털 한오라기도 못 찾으셨다.
오리무중이었다. 씨암닭의 행방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후 남동생과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을 때..
그녀석 이실직고를 하더군.닭을 서리를 해 가긴 했는데..동네에서 잡아 먹으면 닭털이
 빌미가 될 것 같아 며칠을 잡아 먹지도 못하고 애물 단지처럼 숨기고 있다가 할 수 없이

옛날 기동차라고 알랑가 ? 광나루에서 동대문 까지 다니던 경전철 비스므리 한 것.....
그걸 타고 동대문 까지 가서 생닭으로 팔아 먹었다고.....


서리를 해 가긴 했어도 들통날까 겁이나 전전긍긍 했을 넘들이 우리 할아버지를 우습게 보았지.ㅎㅎㅎㅎ

아무리 호랑이 할아버지셨지만 시골에서만 사시다 갑자기 서울로 오시니 하실일도 마땅치 않고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셨을까. 종이 호랑이가 되셨다.

 

세월이 흘러 손녀사위도 보시고...손녀사위가 그때 국도극장 근처 갈비집으로 할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갈비를 띁으시며 고기는 질겨야 제맛이라고 하시며 맛있게 잡수시던 모습...커다란 동치미 무를 와삭와삭 깨물어 잡수시던 모습....내가 할아버지를 닮아 이가 튼튼한 거 같다.

 

우리 할아버지 치아가 튼튼한 비결이 무언지 모르지?
할아버지는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 먼저 세수를 하신다.  세수비누도 안 쓰셨었다.
세수를 다 하신 후 그 물로 양치를 하셨다. 어린 나이에도 너무 비위생적이고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돌아 가실때까지 충치 하나도 없으셨다.

 

치아 안좋은 달구들 우리 할아버지 처럼 해봐~~~

 건치는 따논 당상이랑께~~~~~~~~~ㅎㅎㅎㅎㅎㅎ

 

 흐르는 곡     O'Tannenbaum (소나무야) / Nat King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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