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는 이야기

[스크랩] 내가 만난 아이들 1

새울* 2010. 10. 12. 21:49

수줍었던 아이

 

멀리 시골 한적한 곳에 근무하던 시절..30여년은 되었지 싶다.
전혀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이어서인지 텃새가 심했다.
학기초 달랑 2개반인 2학년을 배정 받았는데..

교실에 딱 들어 서는 순간...이건 아니다 였다.


생활기록부를 대강 훓어 보니 알맹이는 다 빼가고 ...화가 났지만
시아버지 같은 대 선배님이 동학년이니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수 밖에.

반장을 뽑으려니...깜이 없네.40여명중 튀는 아이가 없으니...
고심고심하여 고른아이가 반에서 제일 곱다랗고 눈이 큰 수줍은 여자 아이였다.

 

성적도 우리반에서는 상위에 들지 몰라도 동학년을 합치면 20위정도의 아이였다.
그래도 그 아이 얼굴 예쁘지 마음씨 곱지...제일 맘에 드는 건 글씨였다.
원고지에 또박또박 정자로 글씨를 쓰면 전교에서 글씨가 제일 예뻤다

 

그당시 교장선생님이 나이는 드셨어도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글짓기를 강조하시어
일주일에 한편씩 글을 지어 오라 하셨다. 어느땐 주제를 주시기도 하고....
월요일 조회시간 운동장에서 우수작을 발표..상을 주셨다.

 

40여명중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교장께 제출 할 만한 글은 그 아이 것 밖에 없다.
 글씨가 반듯하니 딱 보기에 내용은 어떨지 몰라도 우선은 눈이 간다.

1년을 담임하면서 그 아이가 날 많이 도왔다고 생각 되어진다.
그아이가 아니었음 난 매주 교장선생님께 제출할 원고를 찾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반장을 시켜놓았더니 아이가 서서히 수줍음도 덜 타고 발표도 잘 하고..거기에 성적도 쑥쑥...
얼마나 이쁜 짓만 하는지....

학기초 동학년에서 20여등이던 성적도 이제 1위자리를 내 놓지 않는다.


반평균도 우리반이 10여점이 높게 나왔다.
할아버지 동학년 선생님께 얼마나 고소하던지~~~깨소금 맛이 그만 할까?
아무리 우수한 아이들만 빼가면 뭐하냐고요...열심히 가르치셔야징~~~ㅎㅎㅎㅎ

 

그 아이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상급학년으로 올려 보내고...1년 후에 그 학교를 그만두고 도시로 나왔는데..

 

얼마전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과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 아이 소식을 들었다.
시골 소녀였던 그아이가 서울 교대에 합격..서울 강남쪽에서 교편을 잡고..

결혼하여 아이 엄마가 되었다고..

 

선경지명이 있으셨던 교장선생님이 훗날 논술고사를 보게 될 줄 아셨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든다. 그 혜택을 입은 아이가 그 수줍고 눈이 컸던 그 아이였으리라...

이제 선생님이 된 그 아이도 먼 앞날을 내다 보는 지혜로 후학들을 길러내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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